
아름다움이 살인의 무기가 될 수 있을까. 19세기 영국 화가 로런스 알마타데마의 ‘헬리오가발루스의 장미’(1888년·사진)는 이 역설적인 질문에 냉혹한 답을 건넨다.
화면을 가득 채운 분홍 꽃잎은 눈이 시릴 만큼 황홀하지만 그 화사한 더미 아래에서 숨을 몰아쉬며 죽어가는 사람들을 발견하는 순간, 경탄은 곧 공포로 변한다.
이 그림은 로마의 문제적 황제 엘라가발루스의 일화를 바탕으로 한다.
기록에 따르면 그는 연회장 천장을 열어 엄청난 양의 꽃잎을 쏟아부어 손님들을
질식시키는 잔혹한 유희를 즐겼다.
사실
여부보다 중요한 것은, 이 장면이 권력의 본질을 너무도 정확하게 꿰뚫고 있다는 점이다.
권력은 종종 아름다움의 얼굴을 하고 등장한다.
이 그림에서 폭력은 칼이나 피가 아니라 장미로 표현된다.
부드럽고 향기로운 것, 누구나 좋아할 법한 것이 순식간에 살의를 띤다.
쾌락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망이지만, 그것이 정도를 넘는 순간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해지는 폭력으로 변질된다.
황금빛 로브를 걸치고 높은 단 위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는 황제의 표정은 기이할 만큼 평온하다.
그는 즐긴다기보다 되레 지루해 보인다.
타인의 생사는 그저 자신의 무료함을 달래줄 일회성 소모품에 불과할 뿐이다.
권력은 잔혹해서 무너지는 것이 아니다.
현실을 외면하고 오직 자신의 탐욕에만 몰두할 때 붕괴한다.
결국 엘라가발루스 역시 성난 근위병들에게 살해당했고, 그의 시신은 차가운 강물에 버려졌다.
비뚤어진 권력은 언제나 그렇게 허망할 만큼 비참한 말로를 맞는다.
장미는 본래 아름다움과 사랑의 상징이다.
그러나 엘라가발루스는 죽음의 도구로 사용했다.
이 그림은 우리에게 묻는 듯하다.
권력자가 뿌리는 장미의 향기가 공동체를 질식시키는
악취로 변하고 있지는 않은지, 현실을 가린 화려한 꽃비가 곧 들이닥칠 파국의 전조는 아닌지.
이은화 미술평론가
쇼트폼과 칼럼
쇼트폼은 이름처럼 짧은 영상이다.
인간의 주의를 빼앗아가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에 한번 들어가면 어이쿠, 그만 봐야지 하고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발표한 ‘2025 스마트폰 과의존 실태조사’에 따르면 만 3~69세 한국인 중 스마트폰 과의존 위험군이 22.7%인데, 이들은 일반 사용자에 비해 유튜브 쇼츠, 틱톡, 인스타 릴스 등 쇼트폼 플랫폼을 더 많이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는 쇼트폼을 안 보려고 노력한다.
쇼트폼 아니더라도 스마트폰 중독 상태다.
그러다 쇼츠에 출연을 하게 되었다.
중독의 온상으로 보였던 쇼츠는 과연 간편한 형식이었다.
보도자료, 서평보다 빠르고 멀리 간다.
3분 남짓한 영상이라 준비 시간부터 길지 않다.
마케터에게 섭외 메일을 받고 무슨 이야기를 할지 잠깐 고민하고 수락했다.
봄에 읽기 좋은 책을 손에 들고 카메라 앞에서 두세 마디 말하자 잘 편집되어 곧 공개되었다.
쇼트폼의 위력은 보는 사람만이 아니라 나오는 사람에게도 강력했다.
내가 나온 영상이 조회수와 ‘좋아요’와 댓글을 얼마나 기록했는지 자꾸 확인하게 되었다.
급속도로 퍼지는 게 기분이 좋고 홍보 효과도 뿌듯한데 가장 중독적인 것은 모르는 사람들이 나를 봐주고 반응하는 댓글이다.
한두 개를 볼 때는 다들 너그럽구나, 하고 점잖게 거리를 두다가 또 없나, 하고 갈급해진다.
새 댓글을 확인하러 들락거리느라 긴 호흡이 필요한 당면 과제에 집중이 되지 않는다.
새로운 매체가 지옥문을 열고 만 것인가?나 때는 ‘책의 사생활’ 코너에 신간 이야기를 써서 회사 블로그에 올리는 게 홍보였다.
코너 이름이 사생활이지만 완전히 사적인 이야기를 쓸 수야 없고 공식 정보만으로 채울 수도 없었다.
이번 책은 정말 쓸거리가 없다며 편집자들은 괴로워했다.
원고를 쓰면서 뜻밖에 예리해지기도 했다.
동료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엿볼 수도 있었다.
쇼트폼 시대에 돌아보니 그때 쓴 것은 일종의 칼럼이었다.
칼럼도 쇼트폼 아닌가. 신문 지면에 ‘기둥’처럼 자리를 차지한 데서 유래한 칼럼(column)은 애초에 길지 않은 것이 특징이었다.
취재 기사보다 짧고 글쓴이의 개성이 또렷했다.
사설과 달리 외부에서 받았고 외부에서 오기에 의견이 다양했다.
20세기에 칼럼은 다양성의 공간이었다.
뉴미디어 시대에 오자 글이라는 속성 때문에 신문은 책과 같은 편이 됐다.
요즘 칼럼니스트들은 독서율 저하로 사고력이 위기에 빠졌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새로운 사고는 미디어의 확장 속에서 가능하다.
<미디어의 이해>에서 마셜 매클루언은 미디어를 “감각과 기능의 외부 확장”으로 정의한다.
“책 지향적인 사람들은 미디어를 끊임없이 사용하는 것을 품위 없는 일”로 여기지만, “우리는 눈과 귀를 사용하는 것과 같은 동기로 미디어를 사용한다.
”텍스트 매체가 힘을 잃어가는 것은 사실이다.
한국의 철학자 김용석은 칼럼의 어원을 성찰하면서 고대 유적지에 남아 있는 돌기둥처럼 칼럼은 미래에 남으리라고 썼다.
“의지대로 되지 않는 운명임을 깨닫는 비극적 품위를 잃지 않으면 된다”니 이 또한 미디어의 이해다.

변한 듯 변하지 않은 여성 캐릭터
박소희 작가의 동명만화를 영상화한 이 작품은 낯선 소재와 장르를 향한 우려에도, 작품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성취했다.
<궁>의 성공 이후 속편 격인 <궁s>(MBC·2007)를 비롯해 <더킹 투하츠>(MBC·2012), <황후의 품격>(SBS·2018), <더킹: 영원의 군주>(SBS·2020) 등 여러 편의 입헌군주제 배경 드라마가 등장했지만, 이 장르의 대표작은 변함없이 <궁>으로 기억될 정도로 그 첫 기억은 강렬하다.
이런 가운데 지난 10일 방영을 시작한 또 한 편의 입헌군주제 소재 드라마가 있다.
<21세기 대군부인>은, 이 장르의 역사를 처음 쓴 MBC가 극본공모전을 통해 발굴한 오리지널 스토리라는 점에서 <궁>의 영광을 재현할 만한 작품으로 일찌감치 주목받아왔다.
드라마는 방영 4회 만에 시청률 두 자릿수를 돌파하며 높은 화제성을 기록 중이지만, 평가는 엇갈린다.
<궁> 방영 20년 뒤의 작품인 데다 제목에서부터 ‘21세기’를 내건 만큼 진화한 스토리를 기대한 이들이 많기에 실망스럽다는 반응이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다만 방영 초기라는 점을 감안해 평가를 잠시 미루면, 흥미로운 관전포인트가 눈에 띈다.
<궁>과 <21세기 대군부인> 사이의 방영 시차로 확인할 수 있는, K드라마의 달라진 지형도가 그것이다.
몇년 사이 글로벌 주류 문화로 부상한 K드라마는 캐스팅, 캐릭터, 서사, 형식 여러 면에서 변화한 흥행 전략을 선보이고 있다.
대표적 예로, 주역 전원을 신인급 배우로 파격 기용한 <궁>과 ‘글로벌 앰배서더’ 급의 배우를 앞세운 <21세기 대군부인>은 캐스팅 전략부터가 다르다.
24부작인 <궁>의 방영 회차 절반에 해당하는 12부작 <21세기 대군부인>의 서사 전략도 마찬가지로 차이를 보인다.
후자는 입헌군주제에 관한 역사적 배경 설명과 인물관계 묘사를 간소화하고 남녀주인공의 갈등과 로맨스에 집중한다.
가장 극적인 변화는 여성 캐릭터에서 찾아볼 수 있다.
<궁>의 주인공 신채경(윤은혜)은 디자이너를 꿈꾸는 평범한 고등학생이었다.
조부 세대의 약속과 파산 직전의 집안 사정으로 인해 정략결혼을 수락한 채경은 ‘신데렐라’이자 ‘효녀 심청’으로 불린다.
이영미 대중예술평론가는 ‘시대와 여배우’라는 글에서 <궁> <포도밭 그 사나이>에서 인기를 끈 “윤은혜적 인물형”이 당시 청년세대의 무기력을 반영한다고 분석한 바도 있다.
그로부터 20년 뒤 <21세기 대군부인>은 ‘왕자와 결혼하는 평민 여성의 신분상승 로맨스’라는 기본적 설정을 <궁>과 공유하면서도, 강하고 주체적인 여성상을 선호하는 요즘 여성들의 욕망을 주인공 성희주(아이유)에게 투영했다.
성공한 글로벌 사업가인 성희주는 목표를 위해 왕자에게 먼저 계약결혼을 제안할 정도로 대담한 여성이다.
신채경과 성희주, 두 캐릭터 사이에는, 명백하게 2015년 ‘페미니즘 리부트’와 더불어 급부상한 여성 서사의 새로운 흐름이 놓여있다.
물론 이 같은 변화에도, 성희주를 선뜻 ‘진화’한 캐릭터로 보기 힘든 지점도 존재한다.
‘강한 여성’ 캐릭터의 힘이 주로 재력에서 비롯된다는 점이 특히 그렇다.
부의 권력을 마음껏 과시하는 성희주 캐릭터는 소위 ‘리치언니’로 대표되는 명품 선망의 아이콘처럼 단순하고 납작해보인다.
더 씁쓸한 것은 20년의 시차에도 변하지 않는 남자주인공의 지위다.
아무리 강한 여성이라도 신분상승을 위해 왕자를 필요로 하는 세계라니, 혁명적인 반전이 있지 않고서야 ‘21세기’라는 수사가 와닿지 않는다.

행복한 밥상, 안녕을 확인하는 한 끼
목적지가 주민센터는 아니다.
새로 지은 주민센터 2~3층에 도서관이 들어섰고, 그곳에 가려면 1층 민원실을 지나야 한다.
오전 시간엔 어르신들이 많다.
민원실 창구의 ‘쌀 신청’ 안내문 앞에서 정부 양곡을 주문하는 어르신들, 서류 한 통을 떼려고 차례를 기다리는 어르신들. 웬만한 서류는 인터넷으로 처리할 수 있어 언젠가부터 주민센터는 내게 갈 일이 없는 공간이 됐다.
그런데 그곳에서 간편하다는 온라인이 조금도 간편할 수 없는, 여전히 얼굴을 마주해야 이어갈 수 있는 삶을 만난다.
집과 새 주민센터 사이에 있는 옛 건물은 한창 리모델링 중이다.
공사 안내문에는 ‘행복한 밥상 2호점 설치 공사’라고 적혀 있었다.
서대문구가 결식 우려가 있는 만 65세 이상 어르신들에게 무료로 점심을 제공하고, 맞춤형 여가 프로그램까지 곁들인 ‘어르신 복합문화거점’을 표방하는 복지사업이라고 했다.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좀 의아했다.
11년째 살고 있는 북가좌동은 오래된 주택과 빌라가 많아 정겨운 주거지의 결이 살아 있는 동네지만 나는 줄곧 이 동네가 꽤 번듯하고, 여유가 있다고 생각해왔다.
그래서 순간 ‘이 동네에 무료 급식 사업이 필요한가?’ 하고 되묻게 됐다.
곱씹어 보니 생각이 짧았다.
‘행복한 밥상’이 대상으로 삼은 ‘결식 우려’와 ‘만 65세 이상’이라는 교집합은 단순히 행정적 편의의 기준만은 아닐 것이다.
고령층 경제활동 인구가 꾸준히 늘고 있다고는 하지만, 정년을 지난 뒤에는 대체로 소득이 줄어든다.
재산이 있더라도 앞날을 생각하면 지출을 더 조심하게 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특히 주거비나 병원비 부담이 큰 경우, 가장 먼저 줄이게 되는 항목은 결국 식비다.
여기에 자녀의 독립과 분가, 배우자 사별 등이 더해지면 식사는 점점 더 혼자의 일이 되기 쉽다.
한 끼를 챙겨 먹는 일과 하루를 나눌 사람이 함께 줄어드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취약계층 또는 몇몇 불운한 이들의 사정이 아니라,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노년의 생활 풍경에 가깝다.
식사 빈곤을 다룬 책 <매일 같은 밥을 먹는 사람들>은 식사의 문제가 이제 단지 굶느냐 마느냐의 차원만은 아니라고 짚는다.
끼니를 거르진 않더라도 먹고 싶은 것을 고르지 못하는 삶, 건강에 좋지 않은 줄 알아도 더 싸고 오래가는 것을 택할 수밖에 없는 삶이 있다.
식사는 그렇게 ‘선택권’의 문제가 된다.
한 사람이 무엇을 먹고 누구와 먹는지는 그 사람의 사정과 형편, 관계의 밀도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일이기도 하다.
혼자 먹는 식사가 모두 문제인 것은 아니지만, 다른 선택지 없이 반복되는 혼밥은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것은 그저 홀로 먹는 한 끼가 아니라, 하루를 오롯이 혼자 감당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북가좌동이 면한 불광천변에는 군데군데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모이는 자리가 있다.
그곳에는 각자 집에서 가지고 나왔을 법한 의자들이 놓여 있는데, 그 언저리에는 ‘의자를 놓지 말라’는 경고장이 붙기도 한다.
함께 머물고 싶은 마음과 공공장소를 관리하려는 질서가 한 장면 안에 맞부딪친다.
‘행복한 밥상’이 무료 급식소가 아니라 어르신 복합문화거점을 표방하는 것도 이런 현실을 반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동안 내가 무심히 지나쳤던 필요, 그러니까 덜 혼자일 수 있고 함께 안부를 나눌 수 있는 공간에 대한 요구가 이 동네에서 움트고 있었다는 걸 뒤늦게 알아챈다.
함께 먹는 자리에는 밥 이상의 것이 오간다.
밤새 안녕했는지, 밥맛은 괜찮은지, 밥상 너머로 오가는 말 한마디는 서로의 존재와 안녕을 확인하게 한다.
그렇게 덜 외롭고 덜 허기진 하루가 쌓일 때 다시 하루를 살아낼 힘이 생기는 법이다.
공사 안내문에 적힌 구청 담당 부서에 전화를 걸었다.
언제쯤 문을 여느냐고, 혹시 자원봉사 신청을 받을 거냐고, 3호점 계획도 있느냐고. 아직 문을 열지 않은 공간에 대해 섣불리 말할 수는 없다.
그래도 누군가 덜 혼자일 수 있는 자리가 이 동네에 잘 뿌리내리길 바라는 마음이, 오지랖이 넓어서라기보다는 관심과 성원에 더 가까운 마음으로 읽혔으면 좋겠다.

제3차 정신건강복지기본계획, 강제입원보다 지역사회로
아쉽게도 국정과제는 반영되지 못했다.
지역에서 함께 살고 싶다는 당사자의 요구는 2025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다시 제기됐고, 종합감사에 출석한 당사자는 함께 새로운 하늘에서 살자고 눈물로 호소했다.
지금까지 국가가 입원·수용·통제에 의존하는 동안 지역사회에는 충분히 투자하지 않았다.
그 결과 OECD 회원 국가에 비해 긴 입원 일수와 많은 병상 수가 유지되고 지역사회 기반 주거·동료 지원 등 삶의 기반은 여전히 취약하다.
국가정신건강 현황 보고서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3개월 내 다시 정신병원에 입원한 사람은 10명 중 3명 수준이고 퇴원 30일 내 자살률은 일반 인구보다 66배나 높다.
정신건강 정책 개편에 대한 열망과 기대 속에 제3차 정신건강복지기본계획이 발표됐다.
이번 계획은 이런 현실에서 강제입원, 격리·강박, 장기입원 등에 관한 실질적 권리구제 장치가 빈약한 점은 과제로 남아 있으나 이재명 정부의 국민주권 가치를 사람 중심 권리기반의 목표로 반영하고,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에 따라 당사자 권익 신장을 앞세웠다는 점에서는 분명한 진전이다.
또한 연구부터 추진단까지 당사자 참여를 통해 정신건강 정책을 권리 중심으로 옮기려 한 점 역시 중요한 전환이다.
특히, 당사자의 살아 있는 경험을 바탕으로 또 다른 당사자의 삶을 지원하는 동료지원이 핵심 성과지표로 제시되고 주거지원 등 여러 영역에 반영된 점은 의미가 크다.
또한 동료지원, 낮활동, 절차조력 등 당사자가 주도하는 서비스를 마련하는 것도 큰 변화다.
이는 충분하지 않았던 지역사회 서비스가 당사자 주도로 확장될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미 세계보건기구(WHO)는 동료지원을 인권기반 지역사회 정신건강 서비스의 핵심 요소로 제시해왔고, 미국에서도 우리나라의 의료급여에 해당하는 메디케이드(Medicaid) 제도 안에서 자리 잡아왔다.
동료지원은 우리에게 낯선 개념이 아니다.
암을 겪어본 사람, 사랑하는 누군가를 떠나보낸 사람 등 그 경험을 겪은 사람들 간의 연결은 약물과 치료가 해결하기 어려운 일상을 회복시키고 삶을 살아가게 한다.
정신건강 영역의 동료지원도 제도를 안내하며 일상을 지원하고 자기결정을 돕는다.
이미 상호이해 속에서 서로를 연결하며 지역사회 사각지대의 공백을 메운다는 점은 연구들로 입증됐다.
서울시에서는 당사자 주도 동료지원센터를 통해 대안을 만들어왔다.
불필요한 입원을 예방하고 사람 간 연결을 통해 사회적 비용을 낮추며 지역사회 통합을 촉진하고 있다.
관악구에 있는 동료지원센터는 중증 정신질환자 160여명이 방문하며 연간 6000명 이상이 이용하고 있고 종사자 중 70%가 동료지원인 자격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지역에서는 이해받기 어려운 정신적 상태를 공유하고 서로가 이해하며 그 힘으로 지역사회 내 안정적인 삶을 지탱하고 있다.
지역사회 내 위기도 당사자가 운영하는 동료지원쉼터에 의해 완화되고 있다.
WHO에서도 우수한 프로그램으로 소개된 아피야 하우스(Afiya House)를 모델로 한 24시간 동료지원쉼터는 비강압적 원칙과 자기결정 그리고 회복지향적 서비스를 통해 지역사회 내에서 위기를 겪는 당사자를 지원하고 있다.
지난 3년간 동료지원쉼터를 이용한 사람은 144명이고 이용을 희망한 사람은 355명에 달한다.
또한 정신질환이 있는 미혼모, 입원이 아닌 사람과 연결을 희망하는 자살 사고자, 가족과의 불화로 극심한 고통을 겪는 사람 등 위기지원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이 방문해왔다.
동료지원은 있는 그대로의 사람을 인정하며 정신건강을 변화시키고 있다.
이제라도 동료지원에 투자해야만 한다.

절대 권력은 말이 필요 없거늘
절대 권력의 부름에 우방들이 즉각 응하지 않는 현실도 낯설고 비현실적이다.
절대 권력이란 무엇이고, 권력은 얼마만큼 절대적일 수 있을까? 문득 전쟁과 내전, 혁명이 교차한 17세기 영국에서 절대 주권을 정당화한 토머스 홉스가 떠오른다.
이 비범하고 명석한 철학자는 법이 없는 자연 상태를 가정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런 무법 상태에서 개인들은 모두 평등하다.
약자도 강자를 죽일 힘이 있다는 점에서 평등하다는 말이다.
자연 상태에서는 그런 자연적 평등 외에 타인을 침해하고서라도 자기 생명을 보존할 자연적 권리도 있으므로, 거기서의 삶은 “고독하고, 비참하며, 험난하고, 잔인하며, 짧다”. 그런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를 견디긴 힘들다.
평화와 질서를 얻기 위해 개인들은 계약을 통해 자신들의 권리를 포기하고 주권자에게 복종한다.
그렇게 다수 대중의 권리로 온몸을 감싼 절대적 주권자가 성경에 나오는 괴수(리바이어던)처럼 탄생한다.
눈여겨볼 점은 주권자가 계약 당사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비유컨대 자연 상태에서 으르렁대던 늑대들이 계약을 맺을 때 미래의 주권자가 될 늑대는 한가로이 잠자고 있었다.
이 게으른 늑대가 깨어보니 자신은 주권자가 되고 다른 늑대들은 순한 양으로 바뀌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주권자는 계약서를 본 적도 없거니와 계약 위반의 책임도 없다.
아예 홉스는 <리바이어던>에서 각자가 권리를 양도하고 주권자의 행위를 승인한다고 못 박는다.
그가 양도에 승인까지 덧붙인 것은 행여 주권자가 비난받을 때 그대들이 승인하지 않았냐고 항변할 안전장치를 하나 더 두기 위함이다.
그러나 달리 해석할 수도 있다.
백성들은 권리를 양도한 후에도 주권적 행위의 ‘원작자’로 남아 있다고 말이다.
그들이 권리를 포기할 때 자기보존의 권리마저 포기한 건 아니다.
백성들은 자신들의 생명을 보호해달라고 주권자의 행위를 승인하는 것이고, 주권자는 이를 위해 무제한적 권리를 행사한다.
하지만 그들은 주권자가 자신들을 지킬 임무에서 실패하는 일을 결코 승인하지 않을 것이다.
주권적 권력이 평화를 유지하고 개인을 보호하지 못한다면, 주권자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며 그에 대한 복종의 의무도 사라진다.
홉스는 절대 왕정을 완벽히 변론했지만, 논증 방식은 왕당파의 눈에 불온해 보였다.
정부에 앞서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들이 존재하고, 이들이 정부 수립을 결정하며, 이들의 지속적 승인을 받지 못한 정부는 복종도 얻지 못하리라 암시하는 그의 논변은 왕당파에겐 불쾌하고 위협적이었다.
절대 권력의 증명이 절대 권력의 한계를 드러내는 꼴이었다.
한 귀족은 이렇게 말했다.
“내 친구 홉스여, 자네가 책을 쓴 충정은 이해하네만, 책을 쓰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 것을.”사실 절대 권력은 굳이 증명될 필요가 없을지 모른다.
권력을 강변하는 순간 권력은 미심쩍게 보인다.
이런 권력의 역설은 오늘날 국제 관계에서도 확인된다.
국제 관계는 각국이 자기보존의 권리가 있고 소국도 대국을 해코지할 최소한의 힘을 지닌 자연 상태와 같다.
이 홉스적 무대에서 초강대국 미국이 일종의 주권자로서 금지하고 허용하는 역할을 해왔지만, 최근 이란 전쟁을 계기로 미국의 절대 권력이 동맹국들의 생존과 안전을 보장하는지, 또 동맹국들이 미국에 지속적으로 동의를 표할지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압도적 힘을 과시하며 말을 쏟아낼수록 점점 더 사람들은 미국의 패권이 자연적이고 자명한 것은 아니라고 느끼게 된다.

이이제이(以夷制夷)

범 잡는 담비란 속담이 있다.
호랑이는 먼발치로나마 본 적이 있지만 담비는 족제비 비슷한 동물이라고 짐작할 뿐이다.
잠시 찾아보니 놀랍게도 담비는 한반도 최상위 포식자라고 한다.
백두대간 험산 준령을 쩌렁쩌렁 호령하는 호랑이도 없고 마침 늑구도 잡혀 제집으로 돌아간 터에 콧날 매끈하고 몸집 자그마한 동물이 고라니의 개체 수를 조절한다니 담비의 사냥법이 자못 궁금하다.
방송국 제작진이 사냥하는 모습을 화면에 담으려 했지만 담비의 발자국을
번번이 놓치는 통에 실패한 듯 보인다.
범접할 수 없는 나무타기 실력에 종횡무진 숲을 뛰어다니는 날렵하고 작은 유선형 몸을 카메라가 도저히 따라잡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꿩의 뼈와 깃털이 발견된 곳에 남긴 발자국을 보고 서너 마리의 담비가 협동 작업을 했으리라 추측하고, 사냥감 상흔을 분석해 목 뒤에서 눈과 귀를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으리라 담비의 사냥 기예를 평가한다.
이렇게 어울려 약점을 급습하는 방식으로 그들은 지금도 어둠 속에서 멧돼지를 노린다.
미시생물계에도 담비 같은 존재가 있다.
육지에도 바다에도
세균은 그득하다.
먹을 것이 넘치고 경쟁자마저 없을 때 무한 증식하는 이런 세균의 개체 수를 조절하는 것이 바로 파지이다.
그런 점에서 파지(phage)는 능히 담비 역을 맡을 만하다.
파지의 정확한 이름은 박테리오파지다.
박테리아를 먹는다고 해서 붙은 이름으로 소속은 바이러스다.
폐 상기도 세포의 여러 기제를 빌려 증식하는 코로나19도 바이러스이다.
무엇보다 파지는 그 압도적인 숫자로 다른 바이러스를 능가한다.
세균이
있는 곳에는 무조건 파지가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러므로 세균을 키우다 파지를 발견한 일은 우연이 아니다.
유럽에서 공부했지만 남미 여러 나라를 오가며 연구하던 펠릭스 드에렐이 파리의 파스퇴르 연구소에 정착한 해는 1909년이다.
이곳에서 장염을 일으키는 세균을 연구하던 드에렐은 배양액에서 세균이 파괴된 투명한 부분을 발견했다.
그곳에서 추출한 여과액을 이질균과 섞자 아주 빠르게 세균이 시험관 안에서 죽어버렸다.
나중에 드에렐은 이 ‘보이지 않는 미생물’을 박테리오파지라고 이름하고 이를 세균 감염 치료에
쓰고자 애를 썼다.
이질을 비롯한 몇가지 감염 치료에 파지를 쓰는 데 어느 정도 성공했지만, 그의 앞길은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
드에렐이 학계 변방의 무명씨로 살았던 것도 한가지 이유겠지만 마침 그 당시에 페니실린이 등장한 사건이 무엇보다 컸을 것이다.
페니실린 가루는 눈으로 볼 수 있었지만 파지는 그렇지 못했다.
게다가 정체 흐릿한 파지는 효능조차도 썩 신통치 않았다.
아마 주사로 몸에 투입했을 때 파지 단백질에 맞서 환자가 항체를 만들어낸 것이 주된 요인이었을 것이다.
파지가 고전하는 틈에 페니실린은
전광석화처럼 세균을 제압했다.
악재가 겹치면서 파지는 동유럽 그루지야의 파지연구소를 빼고는 관심을 두는 곳이 없을 만큼 역사의 무대에서 슬그머니 사라졌다.
한동안 항생제가 세균과의 전쟁에 나서 수많은 백병전을 치렀다.
그러자 내성을 띤 세균이 곳곳에서 등장하기 시작했다.
한편에선 유전자 편집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라는 놀라운 수단도 화려하게 등장했다.
사실 크리스퍼는 파지에 맞선 세균의 방어체계다.
하지만 파지는 오늘도 어김없이 세균 무리의 크기를 일정하게 조절한다.
특정한 세균의 급소를 노리는 특정한 파지가 눈을 부릅뜨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인간의 몸 안에는 대장에 세균이 가장 많다.
세균이 있으니 파지가 없을 리 없다.
건강한 사람의 똥을 걸러 다른 이에게 세균을 이식하면 파지도 덩달아 따라온다.
지금까지 임상에서 가장 뚜렷한 효과를 보인 분변미생물이식(fecal microbiota transplantation)법은 재발성 클로스트리디움 디피실 감염증 치료에 주로 쓰였다.
이 질환은 항생제를 복용한 환자의 장 안에서 유익균이 줄면서 생기는 세균성 대장염으로, 심한 설사와 복통을 유발한다.
몇 종류의 항생제를 교차해 치료하는 방법이 쓰이지만 자주 재발하는 이 증상 열에 아홉은 장내 세균을 이식하는 순간 빠르게 회복됐다.
아일랜드 연구팀은 이 과정에서 파지 역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논문을 셀 계열 잡지에 발표했다.
건강한 사람의 장에서 유래한
파지가 환자의 대장 환경을 치유한다는 결과였다.
선택성 높은 파지의 특성을 맞춤형 이이제이 치료로 연결하려는 과학계는 밤낮없이 바쁘다.

떠벅수 말본새

경상도에선 ‘그래서’ ‘그리하여’를 ‘그래가’라고 해. ‘그러니까’는 ‘그라이끼네’, ‘그러면’은 ‘그라마’, ‘그렇게 할 거다’는 ‘그랄 끼다’. ‘그렇지?’ 하면서 동의를 구할 때는 ‘그자?’ 한다.
그 나쁜 놈을 가리킨 그자가 아니라 ‘그자?’. 전라도에선 훨씬 늘여 빼는데 ‘그라재잉?’ 잉~ 하고 올리면 아니라고 하기가 여간 곤란해져. 세월 따라 변해가니 초심에서 벗어난 친구도 생기고, 돈독에 낯빛이 누렇게 뜬 이도 보여. 인생이
뒤죽박죽 엉터리로 흐르기도 하지. 친구가 “그자?” 하면 두말없이 “오이야~” 하면서 두둔해주고, “그라재잉?” 하면 “음마 두말허믄 잔소리재!” 눈꼬리와 입꼬리가 올라가서 지지해주는 인생이라면 살맛이 나겠다.
말마다 벽에 부딪혀 튕겨 나오는, 대화 불가능자를 만나는 수가 있지. 저만 ‘킹왕짱’ 혼자서 말을 독차지하는 자를 ‘떠벅수’라 한다.
떠버리 수다쟁이는 남의 말을 눈곱만큼도 들으려 하지 않아. 노사 간 임금협상에서도 상대편 말에 귀 기울이지 않고, 대화의 장에 아예 나타나지 않는 공중부양자도 계신다.
그들 지침이
‘깔아뭉개기’인가. 한 귀로 듣고 한 귀론 흘려버리고, 뭉개지고 짓밟힌 목소리는 누가 있어 들어줄까나.말본새를 보면 그 사람 살아온 여정을 살펴볼 수 있지. 말본새가 안하무인 거칠고, 뾰로통 툭툭거리는 이와는 안 얽히는 게 상책이야. 덕을 얼마나 더 쌓아야 이꼴저꼴 안 보고 살까. 과거 이른바 ‘땡전 뉴스’만 같은 ‘트황 시대’, 하루가 멀다고 괴이한 말본새에 세상이 다 심란해져. 보고 듣는 소리가 전쟁 용어인지라 어린애들이 따라 배울까 겁이 덜컥 나.
임의진 시인
커피믹스의 아버지
가르칠 교수도, 공부할 원서 한 권도 귀하던 시절 그들은 서로가 선생이자 학생이 되어 책을 읽고 토론하는 ‘윤강(輪講)’으로 학문의 기틀을 닦았다.
서울대 조선공학과 1회 졸업생들이다.
그 중심에 섰던 인물이 조필제 전 동서식품 부회장이다.
동창회 명칭을 “우리가 만든 배를 바다에 띄우는 날을 꿈꾸자”며 진수회(進水會)라 지은 사람도 그다.
그가 101세를 일기로 영면에 들었다.
▶졸업 후 대한조선공사에 입사해 국내 최초의 철강선 ‘한양호’를 준공하며 꿈을 펼쳐나갔다.
하지만 현실은 가혹했다.
당시 조선소는 수익성이 나빠 월급이 두세 달씩 밀리기 일쑤였고, 아내와 자녀들은 냉방에서 끼니 걱정까지 해야 했다.
보다 못한 장인이 “삼성에서 공장을 계획한다니 그 곳으로 옮겨달라”는 편지를 보내왔다.
몇 달을 버텼지만 결국 장인의 꾸중까지 듣고서 조선소를 떠났다.
▶삼성 제일모직으로 옮긴 그는 국내 최초의 소모 방직 공장 건설을 주도했다.
이어 한솔제지의 신문·교과서 용지 공장을 지었고, 제일제당을 거치며 부산의 제분, 김포의 조미료, 인천의 제당 공장 등 먹거리 산업의 기틀을 다졌다.
한 사람이 배와 섬유·종이·식품에 이르기까지 이토록 다양한 국가 기간 산업의 현장을 일궈낸 사례는 흔치 않다.
한 사람이 열 명 몫을 해내야 했던 우리 산업화의 한 측면을 상징한다.
▶그를 ‘커피믹스의 아버지’로 만든 것은 1970년대 동서식품 시절이다.
출발은 품질 관리 담당 직원의 아이디어였다.
커피와 설탕, 프림을 한데 섞어 ‘한 방에’ 타서 마시게 하자는 발상은 세계 최초의 일체형 커피믹스 탄생으로 이어졌다.
1초라도 아끼려는 ‘빨리빨리’ 문화의 한국인에게 이 작은 봉지 커피는 그대로 히트를 쳤다.
2022년 봉화 광산 사고 당시 고립된 광부들이 커피믹스에 의지해 9일을 버텨낸 일은 이 제품이 가진 또 다른 생명력을 보여줬다.
커피믹스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 외국 관광객들 사이에 선풍적 인기를 끌기도 했다.
▶그의 회고록 제목은 ‘사막에 닻을 내리고’이다.
그 제목처럼 그의 삶은 불가능에 도전해 온 우리 산업화를 잘 보여준다.
커피믹스 한 잔에 한때 가족의 끼니를 걱정하며 청춘의 꿈을 굽혀야 했던 한 엔지니어의 눈물과 열정이 녹아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가 꿈꿨던 조선 왕국이 이뤄진 오늘, 대한민국호의 뱃고동 소리를 들으며 그가 안식에 들길 기원한다.

일러스트=이철원
이인열 기자 yiyul@chosun.com
이상한 나라의 노동자
“우리나라는 이상하게 불안정한 노동에 대해서는 더 많은 보상을 해야 하는데 불안정하면 덜 준다.
이게 근본적으로 잘못됐다.
” 정규직이 더 받고 비정규직이 덜 받는 것이 당연해 보이는 사회에 대통령이 신선한 질문을 던졌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현실을 개선하려는 강한 의지로도 들린다.
하지만 어떤 질문은 사라졌다.
지금 받는 수준으로 정규직 하고 싶나요, 5% 더 받고 기간제로 일하고 싶나요?많은 이들이 정년 보장을 원할 것이다.
그런데 이 질문도 잘못됐다.
권리는 거래될 수 없기 때문이다.
고용안정도, 공정한 임금도 모두 노동자의 권리다.
권리가 거래되기 시작하면 더 이상 권리가 아니게 된다.
일을 계속하기 위해 부당한 처우를 감수하거나, 생계를 위해 생명과 안전을 담보로 걸어야 한다.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현실이다.
2000년대 이후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의 권리는 망각당해왔다.
‘기간제’는 그 과정을 잘 보여주는 예다.
기간제는 기간의 정함이 있는, 달리 말하면 해고 시점을 미리 받아놓는 계약이다.
국제노동기구는 예외적으로만 허용하라고 한다.
그러나 기간제로 계약해 반복 갱신하는 경우가 많았다.
자본은 같은 일을 오래 해 능숙한 노동자를 바랐지만 그만큼의 책임은 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는 기간제 노동자를 보호하겠다며 입법을 추진했다.
그런데 거꾸로 했다.
기간제 사용 사유를 제한하지 않고 기간만 정했다.
2년이 지나면 정규직으로 간주되는 대신 어떤 일이건 기간제 계약이 가능해졌다.
예외가 상례가 되자 1년11개월짜리 근로계약이 횡행했다.
차별시정 신청 제도도 만들었다.
그러나 차별은 사라지지 않았다.
차별하지 말라는 노동자들과 계약 갱신을 하지 않으면 그만이었기 때문이다.
기간을 늘려야 노동자들에게 이롭다는 주장이 시작됐다.
이재명 정부도 기간제 사용 기간 연장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3년11개월짜리 계약으로 권리는 돌아오지 않는다.
기간제보호법은 기간제를 양산했고 파견법은 간접고용에 날개를 달아줬다.
단체교섭은 부인되고 노동조합은 부정되었다.
노동법의 기준은 자본이 책임을 회피하는 가이드가 되었다.
주 15시간 이상 일하는 사람에게 퇴직금과 주휴수당 등을 보장해야 한다면 주 14시간50분짜리 계약을 하는 식이다.
노동법이 오히려 노동자에게 불리하게 적용되는 상황이 오랜 기간 방치되었다.
노동자가 아니게 되는 노동자들도 늘어났다.
화물노동자는 대표적인 특수고용노동자다.
화물운송계약을 맺는 ‘사장’이다.
그러나 ‘사장’이 결정할 수 있는 건 거의 없다.
오히려 물류사업자가 정해준 일정과 물량을 맞추기 위해 심야노동과 과로에 내몰린다.
그러고도 남는 돈은 별로 없다.
부당한 계약 조건에 항의하면 일감을 잃는다.
이들은 노동법에 기대지 못하고 ‘권리 밖’에 남겨졌다.
20일 화물연대 서광석 조합원이 파업 투쟁 중 목숨을 잃었다.
고용노동부는 “소상공인, 개인사업자 등 상대적으로 취약한 지위에 있는 분들”이라며 노동자의 이름마저 지웠다.
‘비정규직’은 고용 형태를 지칭하는 말이 아니다.
기간제, 파견, 하청, 시간제, 특수고용, 플랫폼, 프리랜서 등 무엇으로 불리건 권리를 박탈당한 모든 노동자의 이름이다.
국가는 비정규직의 요구를 특수한 이들의 특수한 권리로 취급하면서 노동자의 보편적 권리를 지워왔다.
이재명 정부는 ‘권리 밖 노동자’를 보호하겠다며 ‘일하는 사람의 권리 기본법’ 제정을 추진 중이다.
‘새로운 노무 제공 방식’이 등장해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현실을 개 하겠다는 취지다.
역시나 거꾸로다.
노동법 밖에 새로운 노동이 등장한 것이 아니다.
자본이 노동자를 노동법 밖으로 밀어내기 위해 새로운 종속 방식을 발명해온 것이다.
책임을 회피하려는 자본의 본성을 주어진 전제로 용인하며 남겨진 문제를 완화하는 접근으로 노동자의 권리를 지킬 수 없다.
이재명 정부는 ‘권리 밖’을 획정하는 동시에 권리를 보호하겠다는 모순에 빠져 있다.
“개별적 차원에서 종속된 노동자들이 집단적 차원에서 자유를 행사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구체적 평등을 추구하는 것이 노동법의 기본 원리이다.
”(알랭 쉬피오) 노동법의 기본 원리가 실현되도록 근로기준법과 노조법을 작동시키는 것이 먼저다.
노동법을 더욱 튼튼하고 쓰임새 있게 만들어야 한다.
이재명 정부는 ‘노동절’ 이름을 되돌려놓았다.
그런데 노동법의 정신은 되살리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이상하다.
근본적으로 잘못됐다.
이상한 나라의 노동자는 혼미하다.

너무 현실적인 사람들
평일 오전에만 근무하는 조건이어서 작가 일을 병행하며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였다.
면접을 보면서 알게 된 것은 급여는 최저시급이고 오전만 근무하긴 하지만 사실상 하루 종일 해야 할 핵심 업무들을 오전에 집중적으로 끝내는 데 가깝다는 것이었다.
업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기재되어 있지 않은 점에 관해 묻자, 면접관은 방대한 업무 설명(하나부터 열까지 하는 거죠)과 함께 지원자가 자신의 창의력과 상상력으로 업무 영역을 넓혀나가길 원한다고 했다.
나는 면접에서 나오자마자 월 급여를 계산해보았다.
80만원이 안 됐다.
이곳이 비영리단체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우선 내 삶에 비영리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 급여로 어떻게 업무에 대한 상상력을 요구하는 것인지 놀라웠지만, 그보다 놀라운 것은 이 자리에 지원자가 매우 많다는 사실이었다.
정부가 운영하는 문학 상주작가 지원사업이 면접 과정에서의 부적절한 심사 논란과 작가 대상 갑질 의혹이 불거졌다.
문학 상주작가 제도는 작가가 도서관과 문학관 등에 일정 기간 머물며 창작하고, 주민과 함께 문학 프로그램도 운영하도록 지원하는 사업이다.
한 도서관에서는 면접 과정에서 작가의 활동 장르와 상관없이 “디지털 드로잉 수업이 가능하냐”는 질문을 공통으로 던져 논란이 됐다.
문제는 내가 바로 그 면접장에 있었다는 것이다.
한 사람을 뽑는 자리에 스물다섯 명이 지원했는데 도서관은 어떤 서류 검토도 없이 그 스물다섯 명을 모두 면접에 불렀다(당연히 면접비는 없다). 한 번에 네 명씩 면접을 진행했고 팽팽한 긴장감 속에 자연히 서로 경쟁적인 답변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적게는 5년에서 길게는 20년까지 자신의 장르에서 성실히 경력을 쌓아온 작가들이었다.
그때 ‘디지털 드로잉이 가능하냐’는 질문을 받았고 하나같이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시인과 소설가들이 “디지털 드로잉은 경험이 없어 조금 어렵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그때 내가 답했다.“할 수 있습니다.
좋아합니다.
뭐든 하겠습니다.
” 내 전공은 수필이고 디지털 드로잉 같은 건 한번 취미로 해본 게 다였다.
다음날 나는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문학 상주작가는 7개월 계약직으로 주 40시간 근무하며 급여는 240만원이다.
이는 서울에서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는 기준으로 책정된 서울 생활임금에도 못 미친다.
7개월간 40회차의 프로그램을 운영해야 하는데 이는 매주 3회 이상 강연을 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는 열악한 조건으로 정평이 난 대학 시간강사의 기준으로도 상한선이다.
이렇게 많은 문화 프로그램을 책임지고 기획 운영하는 데 주는 급여라고는 믿을 수 없다.
도서관 입맛에 맞는 강연을 주 3회씩 준비하고 운영하는 데는 엄청난 노력과 에너지가 필요하다.
한마디로 이 정도 업무 강도로 집필을 병행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 도서관에 문의 전화를 했을 때 담당자는 이렇게 말했다.
“그거 동아리 관리해주시는 거잖아요.”예술가를 비롯한 경제적 취약층을 위한 지원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현금 살포’라는 비난과 함께 빠지지 않고 보이는 여론이 있다.
‘예술가들 현실감각 키우게 해야지 하고 싶은 일 하면서 놀고먹게 하네.’ 우리의 현실감각은 얼마여야 할까. 단 한 명을 뽑는 문학 상주작가 사업에 평균 30명이 넘는 작가들이 지원했다.
예술가로 활동하면서 예술활동 증명에 탈락하는 사례만도 수두룩하다.
예술가만 그럴까. 어디나 일을 구하려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간절하기에 웬만한 부당함은 삼키고 넘길 준비가 되어 있다.
모두가 어렵고 간절하기에 일자리는 마음 놓고 나빠진다.
나부터 그렇다.
이렇게 말했지만 나는 어디든 붙여주는 곳에서 군말 없이 일할 것이다.
필요하다면 작가라는 직업도 내려놓을 것이다.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총독부 청사엔 ‘천황 은혜’ 과학관을… 뒤편엔 ‘사라진 조선’ 박물관을 [염복규의 경성, 서울의 기원]

염복규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교수《 오래된 유물을 수집, 보존하고 전시하는 박물관은 현대 도시의 필수적인 문화·사회교육 시설이다.
경성에서 박물관의 효시는 통감부가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개편하면서 자경전 터에 건립한 ‘이왕가(李王家) 박물관’이다.
총독부는 1910년 한일 강제병합 직후부터 정식 총독부 박물관을 건립하려고 계획했다.》

11915년 경복궁 내 개관한 총독부 박물관(원 안). 전국에서 수집한 석물은 물론이고 근정전, 경회루 등 궁궐 건물까지 야외 전시물처럼 연출했다.
총독부 박물관은 1915년 12월 1일 개관했다.
위치는 경복궁 내 근정전과 동문인 건춘문 사이에 자리 잡았다.
기존의 조선물산공진회 미술관 건물을 박물관으로 전용했다.
공진회 전시관은 앞서 9월에 열린 행사가 끝난 후 철거할 예정인 임시 가건물이었다.
그러나 미술관은 처음부터 박물관으로
사용할 목적으로 장중한 신고전주의 양식의 2층 건물로 지어졌다.
10여 개의 전시관 건립 예산이 총 24만여 원이었는데, 그중 미술관 건립 예산에만 7만여 원이 책정됐다.
총독부 박물관의 설계자는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노무라 이치로(野村一郞)일 가능성이 높다.
대만총독부 기사로 근무한 노무라는 대만총독부 박물관(현 대만국립박물관)을 설계했는데, 두 박물관은 평면이 유사하다.
노무라는 총독부 신청사 설계를 맡았던 게오르크 데 랄란데가 1914년 사망하자 청사 설계를 마무리하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일제가 경복궁에
지은 건물은 모두 그의 손을 거쳤다.
개관 당시 전시 유물은 대개 시중의 골동품 시장에서 수집한 것으로 짐작된다.
조선 후기 경제적 여력이 있는 양반 사대부층 사이에서는 그림이나 글씨를 완상(玩賞)하는 문화가 유행했다.
그러나 병합 전후 이러한 풍조가 점차 퇴조하면서 양반가가 수장한 서화 등이 흘러나와 경성 등 대도시에 골동품 시장이 형성됐다.
이후 제정된 총독부 박물관의 규정에는 유물 수집 범위를 “조선을 주로 하고 또 조선이 동아 대륙에서 제국의 영토인 관계상 특히 수집이 필요한 지나(支那), 인도의 참고품”이라고
했다.
중국은 주로 낙랑군, 대방군 유적의 출토품, 인도는 불교의 전래와 관련된 유물이다.

‘총독부 시정 25주년 기념’ 종합박물관 투시도 공모 당선작. 사진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서울역사박물관총독부 박물관은 내부 전시실뿐 아니라 야외 전시공간이 눈에 띈다.
총독부는 1911년 ‘전국의 폐사지 등에 남아 있는 석물은 모두 국유’라는 지침을 내리고 이를 수집해 경복궁으로 옮겼다.
이렇게 모은 석탑, 탑비, 석상 등을 박물관의 야외 전시물로 꾸몄다.
나아가 원래 경복궁 내 건물인 근정전이나 경회루 등도 마치 야외 전시의 연장
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구도가 만들어졌다.
식민지 권력의 상징인 총독부 청사 이면에 ‘이제는 사라진 조선’을 배치한 셈이다.
3·1운동 이후 젊은 지식인 사이 조선 사회의 실력 양성을 위해 과학, 기술을 배워야 한다는 사회적 열망이 고조됐다.
1924년 일본 와세다대 유학생이었던 이헌구(1905∼1982)는 ‘금일의 조선과 자연과학의 사명’이라는 기고문에서 “금일의 위기를 벗어나서 남과 같은 문명을 건(建)하며 부강을 치(致)하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자연과학을 학(學)하여야 하겠으며 자연과학을 보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아일보,
1924년 4월 21일)한편 청사 신축·준공이 임박하면서 총독부는 남산 자락 구 청사의 이용 방안을 고민했다.
마침 당시 유럽에서는 박물관이 옛것을 전시하는 곳이라는 고정관념을 벗어나 ‘당대사 박물관’ 설립 붐이 일고 있었다.
총독부는 1925년 독일 뮌헨에 개관한 공업 박물관인 독일박물관(Deutsches Museum)의 사례를 참조해 구 청사를 과학·기
박물관으로 개조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문화 통치를 표방한 식민지 권력이 조선 사회의 요구를 수용하는 모양새를 갖춘 것이기도 했다.
그리하여 1927년 5월 10일 다이쇼(大正) 천황 결혼 기념일에 맞춰 은사(恩賜)기념과학관이 개관했다.
‘은사’란 ‘천황의 은혜’라는 의미이다.
미래의 발전을 지향하는 과학을 마치 천황이 조선에 하사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이름에 상징성을 담은 것이다.

1927년 옛 총독부 청사를 활용한 은사기념과학관. 과학, 즉 미래를 마치 천황의 하사품처럼 보이게 이름을 붙였다.
초대 관장으로는 예비역 해군 소장 시게무라 기이치(重村義一)가 부임했다.
그는 1938년까지 무려 11년 동안 관장을 맡았다.
한마디로 은사기념과학관의 방향성은 시게무라가 거의 결정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는 과학관에 대해 “비교적 저급한 조선 민중에게 과학적 지식을 보급하기 위해 현대 과학을 응용한 것이면서 직접
생활에 관계된 비근(卑近)한 것에서 시작해 이를 진열하여 사물의 요령을 자세히 알게 하고, 현대 문화생활이 얼마나 과학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지를 알게 하며, 이어서 고래(古來)의 미신을 타파하고 구래(舊來)의 인습을 버리게 하여 간접으로는 사상의 선도, 산업 조장을 도모하며 나아가 생활의 향상을 촉구하는 사명을 가진 것”이라고 했다.
(‘은사기념과학관의 사명’, ‘문교의 조선’ 1927년 5월호)과학관의 의의는 우수한 일본의 과학 및 기술을 아직 수준이 낮은 조선인에게 보여주고 가르치는 것이라는 인식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관람
동선도 이러한 인식에 따라 구성됐다.
정문을 통과하면 제일 먼저 기계공학실을 거쳐 토목건축실, 가정실, 물리암실, 전기공학실, 농업실로 동선이 이어진다.
2층으로 올라가 천문지리실, 지질광물실, 공산물실, 수산물실, 이화학실을 거쳐 표본을 전시하는 동물·식물실, 조류실을 보는 것으로 관람은 끝난다.
대개의 전시실은 일본의 우수한 기술력을 과시하는 전시물로 채워졌다.
일례로 토목건축실을 보면 병합 이후 새롭게 건설한 교량이나 항구의 사진, 모형을 전시하고 건설에 적용한 신기술을 설명하는 방식이다.
1925년
대홍수 이후 한강 개수 모형, 조수간만의 차를 극복한 인천항의 갑문 모형, 새롭게 정비한 부산항의 부두 단면도 등을 전시했다.
조선인의 ‘활약’은 마지막 코스인 동물·식물실, 조류실에 가서야 볼 수 있다.
박물학은 일제강점기 조선인이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한 거의 유일한 과학 분야이다.
자연을 대상으로 하는 데다가 상대적으로 고가의 장비 없이 개인이 연구를 수행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과학관이 개관하면서 총독부 청사 뒤편으로 조선의 과거를 보여주는 총독부 박물관, 이전 청사에는 조선의 현재와 미래를 보여주는
은사기념과학관 등 박물관 축이 완성됐다.
1920년대 초부터 박물관을 확장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1922년 3월 도쿄제대 교수 구로이타 가쓰미(黑板勝美)가 조선을 방문했다.
근대적 연구 방법에 의해 일본 고중세사 연구를 제도화한 학자로 평가되는 인물이다.
구로이타는 조선의 고적 조사나 역사 편찬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친 권위자였다.
그는 조선과 일본의 역사적 친연성을 보여주는 효과적인 장치인 총독부 박물관을 대폭 확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실제 확장 계획도 세워졌으나 이듬해 간토대지진으로 인한
재정난으로 실현되지 못했다.
총독부는 1929년에도 박물관 확장 계획을 세웠지만 대공황의 여파로 무산됐다.
1935년에는 이른바 ‘총독부 시정 25주년’을 기념해 박물관의 확장을 넘어 은사기념과학관까지 합병한 ‘종합박물관’ 건립 계획이 수립됐다.
경복궁 내 새롭게 미술박물관과 과학박물관을 신축하고 기존 총독부 박물관은 자원관으로 해 미술, 과학, 자원의 3관으로 구성한다는 게 주요 내용이었다.
일반 역사박물관, 과학관, 자연사박물관을 하나로 합쳐 거대한 박물관 단지를 만들려는 구상이다.
그러나 대강의 설계까지
나온 종합박물관 계획은 1930년대 후반 이후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흐지부지됐다.
오히려 총독부 박물관은 1945년 미군의 폭격이 현실적 위협으로 다가오자 전시물을 경주박물관, 부여박물관으로 나눠 순차적으로 소개(疏開)했다.
결국 총독부 박물관은 텅 빈 채 광복의 날을 맞았다.
염복규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