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소화가 알려준 행복의 정의 | 삶과 행복에 대한 철학적 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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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증거

맑은 날의 걸음걸음이 퍽 산뜻하고 즐거울 때가 있다. 이러한 일상의 단순한 보행만으로도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의 기쁨을, 나는 행복의 증거라고 여긴다.

그러나 시간의 흐름이 놓고 간 덤을 온전히 즐기지 못하는 때도 가끔 있다. 아름답게 흔들리는 보랏빛 라일락도, 진녹색 잎사귀와 선홍의 꽃이 매달린 배롱나무도 그저 지나친 채 고개를 숙여 땅만 보고 걷기도 한다.

그것은 삶의 압력에 어쩔 수 없이 숙여진 고개다. 지나치는 풍경이 눈이 있어도 보이지 않는 날이다.

풍경은 행복을 측정하는

가장 오래된 가늠자

행복이란 무엇인가

나는 지금껏 행복의 정확한 의미도, 보편적으로 합의된 정의도 알지 못한 채 그저 하루의 행복과 불행의 증거만을 수집해 왔다.

많은 이들이 서로 다른 언어로 행복을 말하지만, ‘행복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여전히 인류의 오래된 난제이자 미제에 가깝다.

그것은 고통이 없는 상태로 정의되기도 하고, 그 자체로 삶의 목적이 되기도 하며, 때로는 삶을 지속하기 위한 수단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능소화 앞에서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던 나는, 문득 행복에 대한 나만의 정의를 내려보고 싶어졌다.

행복은 과연 목적일까,
아니면 삶을 지속시키는 연료일까?

인간과 언어

인간이라는 종을 제외하면, 생물 각각의 세계는 철학적 사고나 삶의 목적에 대한 사유 없이도 비교적 단순하게 굴러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인간은 다르다. 인간은 감정과 행동 사이에 ‘언어’라는 거대한 공간을 만들어 놓았다.

배가 고프면 먹이를 찾고, 위험하면 도망치는 동물과 달리, 인간은 왜 살아야 하는가를 묻는다.

언어는 인간에게 과거를 재해석하게 하고, 미래를 상상하게 하며, 현재를 설명하게 만든다.

어쩌면 인간에게만 존재하는 영혼이란 바로 언어인지도 모른다.

과거

기억하고 해석한다.

현재

느끼고 경험한다.

미래

상상하고 준비한다.

현재를 살라는 말

요즘 행복에 대해 들리는 가장 흔한 이야기 중 하나는 현재를 살라는 말이다.

미래의 불확실성이나 과거의 회한에서 벗어나 오직 현재를 사는 것만이 행복에 다가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들 말한다.

그러나 나는 그 말에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현재의 감정에는 오직 ‘쾌’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동물 역시 현재를 살아가지만, 그들에게도 슬픔과 상실, 괴로움은 존재한다.

그저 현재를 사는 것만이 행복의 완벽한 정답이라는 명제는 너무 단순한 설명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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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G

우리의 존재 자체가 이미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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