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립아트코리아

나의 친구가 경제적으로 어려운 한 대학생을 후원하고 있었다.
매달 일정 금액을 후원금으로 보내고 가끔 밥도 사주며 격려를 하던 중 우연히 그 대학생의 에스엔에스에 접속했다가 그가 비싸기로 유명한 브랜드 다이어리를 구매한 사실을 알게 됐다.
다이어리 하나에 10만원에 육박하는 돈을 쓴다는 걸 상상도 할 수 없는 나의 친구는 당황스러운 마음을 털어놓았다.
나도 평생 사기 어려운 물건을 사는 걸 보고 그 아이가 철이 없는 건지, 경제관념이 없는 건지, 내가 경제관념을 가르쳐줘야 하는 건지, 아니면 그냥 모른 척해야 하는 건지, 사실 너무 혼란스러워서 앞으로 그 친구를 어떻게 봐야 할지 모르겠어.

빵은 육체를 살리지만, 장미는 영혼을 살린다

김장하 어르신이라면 줬으면 그만이지라고 웃으며 말씀하시겠지만, 보통 사람들은 자신이 쓰고 싶은 거 사고 싶은 거 아껴서 남을 도와주기 때문에, 그 돈이 생존이나 생계와 상관없이 쓰이는 게 마음이 편치는 않다.

하지만 인간의 육체를 살게 하는 건 ‘빵’이지만 영혼을 살게 하는 건 ‘장미’다.

미국에서 노숙자, 매춘부, 범죄자들을 위한 인문학 강의 ‘클레멘트 코스’가 만들어진 것도 같은 맥락이다.

1995년 미국의 작가 얼 쇼리스는 빈곤에 대한 책을 쓰기 위해 뉴욕의 교도소를 방문해 여러 죄수들을 인터뷰했다.
그러던 중 살인에 연루돼 복역 중인 한 여죄수에게 물었다.
사람들이 왜 가난하다고 생각하나요?

그 여죄수는 답했다.
중산층이 누리고 있는 정신적인 삶이 없기 때문이죠.

부모나 학력, 직업 같은 데서 원인을 찾는 답을 기대했던 쇼리스는 예기치 못한 답에 놀라 되물었다.
정신적인 삶이란 무엇이죠?

그녀는 답했다.
극장과 연주회, 박물관, 강연 같은 거죠. 그냥 인문학 말이에요.

이에 큰 깨달음을 얻는 쇼리스는 노숙자와 약물 중독자들을 모아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무료급식이나 일자리를 제공했을 때보다 훨씬 더 많은 이들이 삶의 의지를 회복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국영수보다 중요한 건 음미체

나는 대학 시절 서울의 빈민가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자원봉사 교사를 했었다.
무허가 판자촌인 그곳에서 초등학생과 중학생을 대상으로 영어와 수학을 가르쳤다.
그곳의 많은 아버지들은 알코올 중독자로 가정폭력을 휘둘렀고, 많은 어머니들은 집을 나갔다.
빈곤과 방치, 폭력에 시달리는 아이들은 대개 공부를 못하거나 싫어했다.
나는 그런 아이들을 끌어다가 책상에 앉히고 영어 단어를 외우게 하고 수학 문제를 풀게 했다.
책상에 앉히기부터가 쉽지 않아서 수업을 하고 나면 늘 진이 다 빠져나갔다.
나는 아이들이 빈민촌을 벗어나서 평범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은 공부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이 참 한심하고 답답했고 화가 날 때도 많았다.

반면, 아이들이 놀자고 하면 못 이기는 척 신나게 놀아주는 교사들도 있었다.
아이들과 함께 축구도 하고 농구도 하고, 대중가요를 같이 따라부르고, 아니면 라면을 끓여 먹으며 첫사랑 얘기라도 해주는 교사들이 있었다.
그런 교사들은 당연히 인기가 많았고, 나는 인기가 하나도 없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내심 서운했다.

내가 아이들에게 뭘 잘못했는지를 알게 된 것은 무려 15년이 지나서였다.
아이들에게 진짜 가르쳐야 하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 산다는 게 재미있고 한 번 살아볼 만하다는 감각이라는 걸, 내 아이를 낳아 키운 뒤에야 알게 됐다.
그 감각은 책상이 아니라 노래하고 춤추고 그림을 그리고 아름다운 자연 앞에 서 있을 때 생겨난다.
아이들에게 더 중요하고 시급했던 건 국영수가 아니라 음미체(음악· 미술· 체육)였다.

반짝이는 것들을 밟아야 삶으로 나아간다

세상에는 생존의 세계와 삶의 세계가 있다.

생존의 세계는 밥과 돈벌이, 쓸모와 효율, 가성비가 지배한다.
삶의 세계에는 시와 장미, 피아노와 발레, 만년필과 여행 같은 것들이 있다.
즉 쓸모를 넘어선 아름다움과 취향의 세계다.
쓸모의 반대는 무쓸모가 아니라 아름다움이며, 빈곤의 반대말은 부가 아니라 취향이다.

인본주의 심리학자 매슬로우는 인간에게는 빵만큼이나 아름다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없어도 사는 데 지장 없는 것들, 생존에 별 쓸모가 없는 것들이 실은 진짜 삶을 살게 한다.

김애란 소설가는 산문집 ‘잊기 좋은 이름’에서 이렇게 썼다.
나는 우리 삶에 생존만 있는 게 아니라 사치와 허영과 아름다움이 깃드는 게 좋았다.
때론 그렇게 반짝이는 것들을 밟고 건너야만 하는 시절도 있는 법이니까.

그렇게 반짝이는 것들을 밟고 건너야만 하는 시절이 바로 남루하고 초라하고 궁핍한 시절이다.
또 그렇게 반짝이는 것들을 밟고 건너야만 우리는 비로소 ‘삶’이라고 부를 수 있는 세계에 다다를 수 있다.

그 대학생에게 고급 다이어리는 분수에 넘치는 사치품이 아니라, 내내 이렇게만 살지는 않으리라는, 언젠가는 자신의 취향대로 삶을 가꿔나갈 수 있으리라는 위로이자 희망의 상징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아이는 그 다이어리에 어쩔 수 없이 버텨내는 하루하루가 아니라, 잘 살아보고 싶은 마음과 살 만한다는 감각을 차곡차곡 기록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당황스러워 하는 내 친구에게 말해줬다.
너의 후원 덕분에 그 친구는 결국 생존의 세계에서 삶의 세계로 나아가게 될 거라고. 그러면 너의 후원이 정말로 의미있게 되는 거라고.

김이후의 정확한 위로는?

필자는 언론사에서 사회부, 문화부 기자로 일한 뒤 지금은 프리랜서로 글을 쓰며 먹고산다.
현재 상담심리학을 공부하고 있으며, 누구라도 찾아와서 고민을 얘기하면 ‘정확한 위로’로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는 게 꿈이다.

김이후 afterthislife@nate.com


품격은 태도에서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