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내려옴’…크리스마스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

도메니코 기를란다이오의 '양치기들의 경배', 1485년 작품 일부 | 퍼블릭 도메인도메니코 기를란다이오의 '양치기들의 경배', 1485년 작품 일부 | 퍼블릭 도메인

크리스마스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반짝이는 일루미네이션과 상점에서 흘러나오는 캐럴, 선물을 고르는 사람들의 행복한 미소. 찬바람이 불면 거리 곳곳에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연출된다.
12월 내내 이어지는 크리스마스의 설렘은 우리를 일상과 분리된 또 다른 차원의 순수한 세계로 인도하는 듯하다.

그래서일까. 이 시기에는 사람들의 마음에 선한 온기가 더해진다는 느낌이 든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자신을 돌아보고, 주변 사람에게도 고마움을 전하는 반추의 시간은, 때때로 어려운 이들에게 베푸는 선의로 이어지기도 한다.
나는 크리스마스라는 특별한 날이 주는 선물 같은 이런 순간순간을 좋아하고, 그래서 크리스마스를 정말 사랑한다.

니케아 신경으로 살펴 본 크리스마스의 의미

어쩌면 내가 크리스마스를 지나치게 이상적으로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크리스마스는 늘 근본적인 결함이 있었고, 상업화와 함께 본래의 가치가 훼손된 것도 사실이다.
그럼 크리스마스는 도대체 무엇에 관한 것이고,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사람들은 왜 그토록 크리스마스를 기다릴까?

저마다 생각은 다르겠지만 내게 크리스마스의 의미는 *니케아 신경(信經) 속 한 구절로 다가온다.
신조는 종종 격렬한 논쟁을 낳기도 하지만 이 경우에는 이를 문자 그대로 혹은 신화적으로나 상징적으로, 각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해석할 충분한 여지가 있다고 본다.

*니케아 신경(信經)은 서기 서기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채택된 기독교의 신앙고백문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삼위일체 교리를 담고 있으며, 가톨릭과 개신교 등 주요 기독교 교파에서 공통으로 사용하는 신조(信條, creed)다.

니케아 신경을 묘사한 성화 | 퍼블릭 도메인

그 구절은 바로 ‘그가 하늘에서 내려오셨다(He came down from heaven)’이고, 핵심은 ‘내려왔다(down)’라는 단어라고 생각한다.
크리스마스는 바로 이 ‘내려옴’에 관한 것이며 그것이 신이 우리의 삶 안으로 다가오는 방식이다.

반대로 인간은 ‘위로’ 올라가고 싶어 한다.
더 올라가고, 더 많이 소유하고, 더 성장하기를 원한다.
인간은 스스로를 높은 자리에 올려놓고 자신이 중요한 존재라고 여긴다.
자신의 업적을 과시하며 만족해한다.

그러나 신은 아래로 내려온다.
이 점을 기억한다면, 크리스마스는 우리가 진정한 자기 자신을 찾도록 돕는 계기가 된다.
특히 직장에서 쓰고 다니는 온갖 가짜 자아, 허위의 자아상과 자기 연출을 내려놓게 한다.
대신 우리는 작은 일을 하며,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으로 진짜, 혹은 더 진짜에 가까운 자신이 될 수 있다.
한마디로 말해, 쉬는 것이다.


신성한 힘을 빌어 내 안의 순수함을 찾는 과정

10여 년 전 나는 암으로 죽을 고비를 넘겼다.
그전까지 나는 자신감 넘치는 사람이었다.
하고 싶은 건 뭐든 할 수 있었고, 한계를 몰랐다.
하지만 병원 침대에 누워 점점 쇠약해지면서 내 자아는 점점 사라졌다.
당시 나는 아기처럼 무력하고 의존적인 상태였다.

그제야 광활한 우주와 운명 앞에서 우리는 모두 아기처럼 연약한 존재이고 더 큰 힘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성경 ‘시편’의 표현을 빌리자면, ‘내 팔로 나를 구원할 수 없었음(own right arm could not save me)’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러나 병원을 나선 후 죽음의 문턱에서 느꼈던 나의 연약함이 얼마나 실제적인 것이었는지를 쉽게 잊어버렸고, 나는 예전의 자기중심적인 모습으로 다시 돌아가고 말았다.

어떤 종교이든, 모든 종교에는 우리가 있는 곳으로 찾아오는, 즉 내려오는 신이 있다.
크리스마스가 매년 상기시키는 게 바로 이 부분이다.
이는 신이 우리를 만나는 방식이자, 신은 과시할 필요가 없는 실재(實在) 그 자체라는 걸 의미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이 간절히 바라는 것 역시 진정한 자신의 모습으로 사는 것이다.

사람들이 반려동물을 사랑하는 이유도 별반 다르지 않다.
반려동물이 언제나 진짜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애정도 언제나 진짜다.
고양이가 쓰다듬어 달라고 다가올 때, 거기에는 어떤 가장도 없다.
우리는 왜 아기를 사랑하는가. 우리는 그것을 ‘순수함’이라고 부르지만, 본질적으로는 반려동물에게 느끼는 것과 같은 감정이다.
아기가 우리에게 미소를 지을 때, 그것은 언제나 진짜다.
거기에는 어떤 가장도 없다.

크리스마스는 우리의 내면 속 순수한 ‘진짜 아기’를 만나게 해 준다.
자아도 없고, 모든 경험과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는, 완전히 무방비한 상태지만 그래서 더 아름다운 ‘아기’ 말이다.
그 아기를 발견하는 일이 진정한 크리스마스 선물이 아닐까.

도메니코 기를란다이오의 ‘양치기들의 경배’, 1485년 | 퍼블릭 도메인

이를 깨닫기 위해 반드시 기독교인일 필요는 없다.
무신론자 역시 이것이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비범한 이야기라는 점을 느낄 수 있다.

이제 우리 모두 잘난 체하는 자아의 산에서 내려와, 순수한 자신으로 돌아가 보자. 아기처럼 말이다.
만약 우리가 늘 이렇게 살 수 있다면, 세상은 얼마나 더 나아질까.

크리스마스 때만이라도 이런 시도를 해 본다면 그것으로 충분할지도 모른다.
적어도 이때만큼은 그렇게 해 보자.

니케아 신경의 그 찬란한 한 구절, ‘그는 하늘에서 내려왔다’를 되새기며, 크리스마스의 진정한 의미가 여러분의 마음과 정신 속에서 살아 움직이기를 바란다.
내려오는 것이 곧 길이다.

완벽한 빛과 신성의 묘사…스페인 황금기를 빛낸 화가, 리베라

‘성 안나, 알렉산드리아의 카타리나와 함께 있는 성가족’의 세부(1648), 후세페 데 리베라 | 퍼블릭 도메인‘성 안나, 알렉산드리아의 카타리나와 함께 있는 성가족’의 세부(1648), 후세페 데 리베라 | 퍼블릭 도메인

후세페 데 리베라(1591~1652)는 17세기 스페인의 위대한 예술가 중 한 명이다.
그는 어린 시절 이탈리아로 이주해 그곳에서 경력을 쌓았다.
‘로 스파뇰레토(작은 스페인 사람)’이라 불린 그는 빛의 화가 카라바조의 제자 중 한 명이었다.
리베라는 스승의 명암법을 한층 더 발전시켜 더욱 밝은 빛을 탐구하며 예술혼을 불태웠다.
또한 그는 베네치아의 화법과 스페인의 사실주의, 볼로냐의 고전주의와 로마의 미술 양식을 통합해 완성도 높은 작품을 선보였다.

그의 다문화적 접근은 자신만의 독특한 예술적 표현을 탄생시켰고, 이는 그의 후기 걸작 중 하나인 ‘성 안나, 알렉산드리아의 카타리나와 함께 있는 성가족’에 완벽하게 구현됐다.
이 작품은 아름다움과 사실주의, 성스러운 것과 불경한 것을 모두 한 화면에 구현했기에 더욱 높은 가치를 지닌다.

스페인의 황금시대

‘후세페 데 리베라의 자화상(추정)’(1591~1652사이) | 퍼블릭 모데인

17세기는 스페인 바로크 미술 부흥기였다.
이 시기를 황금기라 부르는데, 당시 예술계를 호령한 네 명의 화가가 있었다.
프란시스코 데 수르바란, 디에고 벨라스케스,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 그리고 리베라다.

리베라는 제화공의 아들로 태어나 1606년 이탈리아로 이주했다.
그는 주로 이탈리아 로마에서 활동하며 초기 경력을 쌓았다.
1616년 그는 나폴리에 정착해 현지 저명 예술가의 딸과 결혼하고, 이후 그곳의 가장 중요한 화가로서 정착해 주변 예술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당시 나폴리(현 이탈리아의 일부)는 스페인 제국의 일부였으며 임명받은 총독이 통치했다.
이들은 스페인 출신 예술가들을 주로 후원하며 예술 발전을 도모했다.
그 덕에 리베라는 새로 정착한 도시에서 손쉽게 적응해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리베라는 오수나 공작, 알칼라 공작 등 여러 귀족에게서 후원을 받아 다양한 작품을 그릴 수 있었다.

‘철학자(유클리드로 추정)’(1637), 후세페 데 리베라 | 퍼블릭 도메인

후원을 통해 그가 그린 작품은 대부분 본국으로 보내졌다.
작품 중 대다수가 왕실 컬렉션에 포함됐고, 그는 스페인을 떠나 생활했지만 스페인에서 사랑받는 예술가로 성장했다.

리베라는 당시 스페인 예술계에서 드물게 다양한 분야에 능통한 화가였다.
그는 그림뿐만 아니라 조각에서도 뛰어난 재능을 발휘했다.
또한 그는 종교화, 초상화, 정물화, 풍경화 등 다양한 주제를 다뤘다.

리베라의 걸작

‘성 안나, 알렉산드리아의 카타리나와 함께 있는 성가족’(1648), 후세페 데 리베라 | 퍼블릭 도메인

그의 걸작 ‘성 안나, 알렉산드리아의 카타리나와 함께 있는 성 가족’은 1648년에 그려진 대형 작품이다.
이 작품에는 성모 마리아, 예수, 성 요셉, 성 안나, 성 카타리나가 등장한다.

화면 아래 빛이 드는 곳에는 파란색과 빨간색 옷을 입은 성모가 어린 예수를 안은 채 머리를 맞대고 있다.
성 카타리나는 예수의 오른손에 입을 맞추고 있다.
이 세 인물은 완벽한 비율과 이상적인 아름다움으로 묘사돼 있다.

(왼쪽) ‘목동들의 예배’(1650)의 세부, 후세페 데 리베라. (오른쪽) ‘성모와 아기’(1646), 후세페 데 리베라 | 퍼블릭 도메인

이 작품에서 나이 든 성 요셉과 성 안나는 당시 실존했던 인물을 모델 삼아 그려졌다.
이는 리베라의 스승인 카라바조가 노동 계급을 모델로 삼아 인물을 묘사한 것에서 발전한 것으로, 르네상스 예술가들이 이상적 인물을 모델로 삼았던 것과 대조된다.
또한 이 작품에는 일상적인 요소가 다수 포함돼 있다.
화면 아래의 바구니와 안나가 들고 있는 과일 등을 통해 우리는 이 그림의 배경이 평범한 가정집 내부임을 알 수 있다.
그는 평범한 곳을 배경으로 삼았지만, 성 카타리나가 입은 옷의 황금빛과 빛을 받은 인물들의 눈부신 피부와 하얀 옷 빛깔의 극적인 묘사를 통해 신성을 표현했다.

‘성 안나, 알렉산드리아의 카타리나와 함께 있는 성가족’의 세부(1648), 후세페 데 리베라 | 퍼블릭 도메인

이 작품에는 리베라의 환상적인 인물 묘사 실력과 함께 정물화 기술도 구현돼 있다.
성 안나의 손에 들린 꽃과 바구니 속 과일, 바닥에 놓인 바구니의 재질과 그 속에 담긴 천의 질감은 어느 정물화 못지않게 세밀하고 사실적으로 표현됐다.

선조의 영향

‘의자의 성모’(1624), 귀도 레니 | 퍼블릭 도메인

이 작품에는 그가 앞선 시대의 예술가에게서 받은 영향이 잘 구현돼 있다.
그는 르네상스 예술가 라파엘로의 인체 묘사 구현 기법을 존경했고, 바로크 시대의 귀도 레니에게선 우아하고 조각적인 묘사를 배웠다.
이 예술가들 또한 전통 기법을 따른 수많은 예술가에게서 영향을 받아 작품활동을 펼쳤고, 그 전통은 리베라에게도 이어졌다.

화려한 성공을 거뒀던 화가

리베라는 1626년 교황 우르바노 8세로부터 그리스도교 훈장을 받았을 정도로 생전 큰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미술사에서는 카라바조와 다른 동시대 예술가들에게 가려져 빛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전통적 가치를 잇고 부흥을 위해 노력했던 그의 빛나는 작품은 여전히 우리에게 큰 감동과 영감을 전한다.

르네상스의 정수와 역사를 품은 명화…라파엘로 ‘시스티나 성모’

‘시스티나 성모’(1512)의 세부, 라파엘로 산치오 | 퍼블릭 도메인‘시스티나 성모’(1512)의 세부, 라파엘로 산치오 | 퍼블릭 도메인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함께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예술가 라파엘로 산치오(1483~1520)는 많은 초상화와 성모화를 남겼다.
조화롭고 우아한 형식으로 그의 작품은 많은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고전 회화의 전형으로 자리 잡은 그의 작품은 후대 예술가들의 열망과 동경의 대상으로 불린다.

‘아테네 학당’(1509), 라파엘로 산치오 | 퍼블릭 도메인

1509년 작 ‘아테네 학당’과 더불어 라파엘로의 대표작은 바로 ‘시스티나 성모’(1512)이다.
이 작품은 순교자이자 성인(聖人)인 교황 식스토 2세와 위험한 분야에 종사하는 이들을 위하는 수호성인 성 바바라에게 모습을 보인 성모와 아기 예수를 묘사한 걸작이다.
이 작품은 천상과 지상의 모습을 병치한 특별한 구성으로 찬사를 받는다.

‘화가들의 왕자’

‘아테네 학당’(1509)속 라파엘로의 자화상 | 퍼블릭 도메인

라파엘로는 이탈리아 궁정화가인 아버지에게서 미술교육을 받았다.
좋은 환경에서 양질의 교육을 받으며 눈부신 성장을 보인 그는 ‘화가들의 왕자’라 불리기도 했다.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재능으로 전도유망했던 그는 37세에 사망했지만, 짧은 생애 동안 많은 작품을 남겨 빛나는 업적을 쌓은 예술가로 지금까지도 사랑받고 있다.

그는 이탈리아 피렌체에 거주하며 명성을 얻다가 교황 율리우스 2세의 요청으로 1508년 로마로 이주했다.
교황 궁전 재장식 작업에 참여하게 되며 그는 천재성을 인정받고 도시 최고의 예술가로 자리매김했다.
웅장한 프레스코화, 태피스트리, 역사화, 초상화, 종교화 등을 그리던 그는 1512년 그의 역작 중 하나를 완성하게 된다.

‘시스티나 성모’

‘시스티나 성모’(1512), 라파엘로 산치오 | 퍼블릭 도메인

‘시스티나 성모’는 교황의 지시로 탄생한 작품이다.
작품의 가운데에는 아기 예수를 안은 성모가 서 있다.
구름을 밟고 서 있는 성모 뒤편에는 수많은 천사의 머리가 환상처럼 보인다.
학계에서는 작품에 대해 “성모는 하늘의 영광에서 지상으로 아기 예수를 데려와 그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상징한다.
예수와 성모의 엄숙한 표정은 앞으로 다가올 수난에 대한 암시로 보인다”라고 설명한다.

모자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인물은 한때 지상의 존재였던 이들이다.
관객을 향해 손가락을 가리키고 있는 이는 교황 식스토 2세이고, 오른쪽의 여인은 성녀 바바라다.
두 사람 모두 3세기 초 기독교 순교자이며 산 시스토에서 숭배받는 인물이다.

‘시스티나 성모’(1512)의 세부, 라파엘로 산치오 | 퍼블릭 도메인

그림 아래 난간에는 아기 천사 두 명이 턱을 괴고 앉아 있다.
 이들은 기독교에서 두 번째로 높은 계급의 천사인 지천사(智天使, 케루빔)로, 라파엘로는 작품을 그리던 당시 성모의 모델이 된 여인의 아이들이 어머니를 기다리는 모습에서 착안해 천사를 그려 넣었다고 전해진다.

이 작품은 피아첸차의 산 시스토 수도원에 약 250년 동안 전시돼 있었다.
그곳에 전시되는 동안 이 작품은 크게 인기를 끌지 못했다.
이후 1750년대에 작센의 선제후이자 폴란드의 국왕이었던 아우구스투스 3세(1696~1763)가 수도사들에게 큰돈을 지불하고 이 작품을 사들였다.

‘위대한 라파엘로의 작품을 위한 공간 만들기’(1855), 아돌프 폰 멘첼 | 퍼블릭 도메인

아우구스투스는 전설의 화가 라파엘로의 작품을 소장하고 싶은 열망에 작품을 구매했고, 마침내 작품이 도착하던 순간을 당시 예술가가 화폭에 기록했다.
독일의 화가 아돌프 폰 멘첼(1815~1905)은 ‘위대한 라파엘로의 작품을 위한 공간 만들기’에 크게 기뻐하며 자신의 왕좌를 뒤로 밀어 공간을 제공하는 아우구스투스의 모습을 담아냈다.

걸작의 영향력

아우구스투스는 이 작품을 독일 드레스덴에 전시해 많은 이들이 볼 수 있도록 했다.
19세기에 접어들며 이 작품은 다른 미술품, 문학, 음악 등에 스며들어 큰 영향을 미쳤다.
러시아의 대문호 표도르 도스토옙스키는 미술품 중 이 작품을 가장 좋아한다고 밝혔다.
또한 작품 속 아기 천사의 이미지는 도자기, 문구류, 식음료 등 각종 공산품의 로고에 차용돼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 작품은 제2차 세계대전 중 전시가 중단됐고, 전쟁이 끝나갈 무렵 러시아 군사의 눈에 띄어 1945년 러시아로 옮겨졌다.
10년 후 당시 소련 정부가 작품을 반환하기로 하면서 다시 드레스덴으로 돌아가 현재는 독일 드레스덴 미술관에서 매일 수많은 관객을 반기고 있다.

‘라파엘로 산치오의 자화상’(1504) | 퍼블릭 도메인

르네상스 시대 최고의 예술가 라파엘로의 걸작이자 종교 예술의 정점으로 평가받는 이 작품은 뛰어난 예 성뿐만 아니라 많은 역사를 담은 작품으로 평가된다.

제임스 바레셀은 파인 아트 감정, 군사 역사, 뉴 에스턴 유럽 등 다양한 잡지에 기고한 프리랜서 작가입니다.

성모, 어머니, 그리고 5월…예술로 이어온 전통의 가치

‘마돈나와 아이’(1855)의 세부, 프란츠 이텐바흐 | 퍼블릭 도메인‘마돈나와 아이’(1855)의 세부, 프란츠 이텐바흐 | 퍼블릭 도메인

그리스 신화 속 봄과 성장의 여신 마이아(Maia)의 이름을 딴 메이(May·5월)는 서양 문화에서 오랫동안 다산과 가정의 행복을 상징하는 단어로 쓰였다.
고대 그리스·로마인들은 봄과 여름을 잇는 달인 5월을 축하하기 위해 여러 의식과 축제를 열어왔다.
그리고 기독교인들은 신앙을 강화하고 신성을 축복하기 위해 예수의 어머니인 마리아(성모)를 5월과 연결 짓기 시작했다.

‘마니피캇의 마리아’(1483), 산드로 보티첼리 | 퍼블릭 도메인

기독교의 전파와 발전에 따라 기독교 예술가들은 성모를 주인공으로 한 수많은 그림과 조각을 만들었다.
기독교에는 모성을 상징하는 많은 성인이 있지만, 현재까지 가장 많은 예술품에 남아있는 모성의 상징은 성모와 그의 아들 예수다.

천국의 창문

동양에서는 성모상을 은총의 통로로 간주한다.
즉, 천국으로 향하는 창문 역할을 한다.
이처럼 수 세기 동안 성모는 기독교 예술의 주요한 형태로 여겨졌다.
특히 성모와 어린 예수가 등장하는 것은 더욱 깊은 종교적 의미를 지녔다.
어린 예수는 그가 태어날 때부터 신성과 인간성을 모두 갖춘 온전한 존재라는 의미로 묘사됐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13세기 추정), 작자 미상 | 퍼블릭 도메인

르네상스 시대에 그려진 작자 미상의 작품 ‘영원한 도움의 성모’는 그 아름다움과 상징성으로 인해 서양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다.
작품에는 어머니에게 도움을 청하고자 달려가 품에 안긴 어린 예수와, 아들이 아닌 관객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는 성모가 등장한다.
그들 위에는 대천사 미카엘과 가브리엘이 있다.
그들은 예수가 처형당할 때 사용된 도구인 창, 수세미, 십자가, 못을 들고 있다.

어린 예수는 자신을 보호해 주는 어머니의 손을 꼭 잡고 있다.
그의 끈 풀린 신발 한 짝은 두려움에 황급히 달려온 상황을 설명해 준다.
배경을 채운 황금빛 노란색은 천국을 상징하고, 성모가 입은 옷의 푸른색은 초월과 신성함을 의미한다.

모성을 강조하다

‘마에스타’(1308), 두오 디 부오닌세냐 | 퍼블릭 도메인

13세기 이후 서양의 예술가들은 이전보다 자연스러운 형태로 예수와 성모를 묘사했다.
이탈리아 화가 두초 디 부오닌세냐(1255~1318)의 작품 ‘마에스타(위엄)’는 비잔틴 성상화 양식의 과장됨에서 자연주의로 바뀌는  사조 전환의 출발점이 된 작품이라고 평가받는다.
이 작품에서 성모는 관객이 아닌 아이에게 집중하고 있고, 예수는 몸집이 작은 어른이 아닌 어린아이의 모습 그대로 그려졌다.

‘성 안나와 함께 있는 성모와 아기’(1503), 레오나르도 다빈치 | 퍼블릭 도메인

이 작품 이후 이탈리아에서는 르네상스 사조가 꽃피며 보다 사실적인 묘사가 인기를 얻게 된다.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의 1503년 작품 ‘성 안나와 함께 있는 성모와 아기’에는 당시 작품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성모는 자신의 상징색인 푸른 옷을 입고 있으며 어린 예수는 선한 목자의 상징인 어린 양을 안고 있다.
성모는 사랑스러운 어머니의 상징인 따스한 미소를 머금고 아들을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그녀 뒤의 안나(성모의 어머니)는 자신의 딸과 손자를 사랑스러운 눈길로 바라보고 있다.

‘마리아와 천사와 아기’(1534), 지롤라모 프란체스코 마리아 마졸라 | 퍼블릭 도메인

성모와 예수를 상징적으로 잘 나타낸 또 다른 작품은 지롤라모 프란체스코 마리아 마졸라(1503~1540)의 ‘마리아와 천사와 아기’이다.
파르미자니노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마졸라는 이탈리아의 화가로 인체를 실제보다 길게 표현하는 과장법과 매우 섬세한 여성미를 표현한 예술가다.

화면 가운데에는 성모가 어린 예수를 품에 안고 있다.
그녀 왼쪽에는 천사들이 모여 그녀 품속의 예수를 관찰한다.
성모의 무릎 위 힘없이 늘어진 어린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의 죽음을 의미한다.
마졸라는 예수의 희생을 기리기 위해 어린 모습의 예수를 등장시켜 이 작품을 완성했다.

현대의 성모

‘거리의 성모’(1894), 로베르토 페루치 | 퍼블릭 도메인

앞서 수많은 작품이 탄생한 지 수백 년 이후, 1890년대 이탈리아 화가 로베르토 페루치(1853~1934)는 ‘거리의 마돈나’로 현대적인 모자상을 그려냈다.
푸른 망토를 걸치고 금색 스카프를 머리에 두른 여인은 하늘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있다.
그녀의 품에 안긴 아기는 평화로운 표정으로 잠에 취해 있다.

페루치는 이 작품을 성모와 예수를 본떠 그린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실제로는 거리에서 마주한 소녀와 동생의 모습을 모델로 삼아 그린 것이지만, 의상의 색과 인물의 배치에서 성모와 예수를 오마주한 듯 신성을 느낀 대중들은 이 작품에 열광했다.

선한 어머니

‘마돈나와 아이’(1855), 프란츠 이텐바흐 | 퍼블릭 도메인

수 세기에 걸쳐 예술과 문학은 기독교의 가르침을 통해 성모의 숭고함과 신성함을 기려왔다.
특히 많은 작품에서는 성모의 선함과 사랑 등 모성의 특정 미덕이 주로 강조됐다.
성모는 우리 모두의 어머니이자 우리가 추구해야 할 중요한 가치로 여겨졌다.

우리는 박물관이나 교회, 많은 매체에서 이러한 작품을 마주할 수 있다.
이 작품들은 수많은 어머니에게 영감과 희망, 위로를 주었고 가족들에게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이해를 전하고 어머니를 잃은 이에겐 위안을 건넸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전통적 가치를 품은 예술은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많은 감동과 시사점을 전하고 있다.

소묘와 색채의 완벽한 조화로 그려낸 아름다움…귀도 레니

‘소묘와 색채의 결합’(1624)의 일부, 귀도 레니. 캔버스에 오일. 파리 루브르 박물관 | 공개 도메인‘소묘와 색채의 결합’(1624)의 일부, 귀도 레니. 캔버스에 오일. 파리 루브르 박물관 | 공개 도메인

풍부한 색채감각과 세련된 지성주의로 수많은 걸작을 남긴 화가, 귀도 레니(1575~1642)는 17세기 이탈리아에서 활동하며 유럽 전역의 교황, 귀족, 군주들의 후원을 받았다.

‘자화상’(1602), 귀도 레니. 캔버스에 오일 | 공개 도메인

레니는 ‘신성한 존재(The Divine)’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는 신을 시각적 형태로 묘사하는 능력을 크게 인정받으며 동료들과 차별을 이뤘다.
그의 작품은 우아함, 아름다움의 대명사로 여겨진다.

레니의 작품에 대해 전문가들은 ‘타고난 재능의 결과가 아닌 그림과 채색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도록 한 엄청난 노력의 결과’라고 설명한다.
그 노력의 결과물 중 하나인 ‘소묘와 색채의 결합’은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의 영구 소장품 중 하나로 1685년 루이 14세가 구입한 작품이다.

소묘와 색채의 결합

‘소묘와 색채의 결합’(1624), 귀도 레니. 캔버스에 오일. 파리 루브르 박물관 | 공개 도메인

따뜻하고 부드러운 색채와 아름다운 인물 묘사가 돋보이는 이 작품은 단순한 인물화가 아닌 우화적 주제를 내포하고 있다.
레니가 표현하고자 한 주제의 동기는 그가 유년기 시절 받은 예술 교육에서 찾을 수 있다.

레니는 유럽 최고의 예술 중심지 중 하나였던 볼로냐에서 태어나 바로크 양식을 정립한 예술가 안니발레 카라치, 아고스티노 카라치 두 형제의 지도를 받았다.
그들은 르네상스의 거장 라파엘로, 베로네제 등 자연주의와 고전주의 예술가의 양식을 참고하길 권유했고, 레니는 그들에게서 예술적 영감을 얻었다.
카라치 형제는 당시 유행하던 인위적인 매너리즘 미학을 단호히 거부했다.
그 대신 르네상스 시대의 미학을 따르며 그림과 색채의 조화를 추구했다.

미술의 근본을 논하다

14세기 르네상스 시대에는 우화적, 종교적, 고전적 주제를 다룬 회화에 대한 연구가 발전했다.
특히 작품을 구성하는 규칙에 대한 논의가 활발했고, 그에 대한 논문이 많이 생산됐다.

르네상스 시대의 사람들은 ‘화가에게 있어 소묘와 색채 중 어느 것이 근본인가’라는 화두를 두고 많은 논쟁을 벌였다.
당시 대부분은 소묘를 우선으로 뒀다.
그들은 소묘는 남성적이며 지성을 다루지만, 색채는 여성적이고 감각을 다룬다고 여겼다.

이후 17세기에 이르러 그들의 계보를 잇는 예술가 카라치 형제와 레니는 예술적 특징의 기본이 되는 소묘와 색채의 평등을 주장했다.

그림으로 구현된 조화

‘소묘와 색채의 결합’의 왼쪽에는 한 남성이 있다.
그는 금빛 망토를 두르고 펜을 들어 종이에 뭔가 그리고 있다.
오른쪽 여성은 보라색 천을 머리에 두른 채 한 손에는 붓과 팔레트를 들고 있다.
여성이 쓴 천의 끝자락은 남성의 망토 끝에 닿아있다.
남성은 여성을 안아주며 서로의 시선을 부드럽게 마주한다.
인물의 배경과 책상은 검은색으로 칠해 인물에 대한 집중도를 높인다.

이 작품은 레니가 추구한 조화를 우화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대립과 다툼이 아닌 이해와 포용, 조화를 강조한 이 작품은 원형 캔버스에 그려져 그 주제를 재차 강조한다.
레니는 다양한 색채와 섬세한 묘사를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전달하는 동시에 예술적 성취도 함께 이뤘다.

레니의 유산

‘성 요셉과 아기 예수’(1640), 귀도 레니. 캔버스에 오일. 휴스턴 미술관 | 공개 도메인

레니는 엄격한 고전주의 기법을 따라 경건한 예술의 순수성을 강조했던 예술가다.
그는 루벤스, 카라바조와 함께 19세기까지 최고의 화가로 평가받았으나 20세기에 이르러 미술 사조의 변화로 경시됐다.
그러다 21세기 들어 다시 주목받으며 전 세계에 고전 예술의 가치를 전하고 있다.


inG

우리의 존재 자체가 이미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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